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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홍 명예교수, 흙과 나무의 결과 함께한 25년
별은 하늘에 올라가 피어난 꽃이요, 꽃은 땅에 떨어져 환생한 별이라 할 수 있으니, 곧 이들은 다 같이 꿈꾸는 존재라 여겨 따로이 구분하지 않을 따름이다

장수홍 명예교수가 25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지난 2월 정년퇴임을 맞았다. 미술대학의 구성원이라면 52동 야외 작업장에서 한결같이 흙과 나무와 씨름하고 있던 장수홍 명예교수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없을 터. 여전히 장수홍 교수의 그 열정이 눈에 선하다.

호두나무 의자 2008 113*51*48

1969년 응용미술과에 입학한 이후 이어 온 흙 작업을 통해 장수홍 명예교수는 자연에서 기본적인 모티브를 얻어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연의 규칙성을 찾아내고자 노력해왔다. 작품은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단순한 구조가 반복되면서 복잡한 전체 구조를 만들어 낸다. 1980년 제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총 7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서울 국제도예 비엔날레를 비롯해 2013년 3 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의 PRISM까지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제5회 세계도자비엔날레 ‘불의 모험-Venture of the Fire’의 총감독을 거치며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도예가로 평가되었다. 동그란 단위체가 모여 복잡 미묘한 형태로 완성되는 2010년의 <별> 은 장수홍 명예교수의 대표작으로서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었다.

 그 이후, 장수홍 명예교수의 작품 활동 분야는 나무로 바뀌었는데, 나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목공일을 시작한 것은 2006년의 개인전을 마친 때이다. 흙에서 나무로 작업을 전환하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에 장수홍 명예교수는 “이렇다 할 계기는 없었다. 장작 가마의 땔감으로 쓸 양으로 모아진 장작들 중 불에 넣기에는 제법 두텁고 잘생긴 나무들이 있었다. 하나씩 주워서 놀잇감으로 여겼던 것들이 도자 일을 잠시 멈추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고 술회했다. “흙과 나무를 굳이 비교하자면 그 둘은 아주 다르다. 도자기는 한 번 성형하고 구워 버리고 나면 백년, 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지만 나무는 아무리 멋들어지게 만들어 놓아도, 뒤돌아보면 바뀌더라”고 말한다. 그렇게 장수홍 교수가 만들어낸 나무 작업만 150여점. 그 숫자는 작업에 매진하는 장수홍 교수의 성실함을 잘 말해준다. 그 중 대표작은 2008년 제작한 <의자>다. 나무가 자라온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살려서 앉는 이에게 더욱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유머러스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최근 2011년 봄에 열린 장수홍 교수의 일곱 번째 개인전 <장수홍-흙과 나무 사이>展에서는 그동안의 흙과 나무 작업을 함께 선보였다. 갤러리 LVS 조재현 큐레이터는 장수홍 교수를 포정해우(庖丁解牛)를 이룬 명인이라 칭했다. 칼잡이의 명인 포정만큼이나 오랜 시간 흙을 다루고 나아가 나무의 결 또한 자유자재로 만져 작가의 용기와 힘이 넘친다는 의미다.

별 2010 28*28*26

장수홍 교수는 52동의 길목 한켠에서 뿌옇게 톱밥을 날리며 작업해 오던 공간을 하나둘씩 치우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학교를 떠나며 학교에 당부할 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교수들의 부족한 작업 공간에 아쉬움을 표했다. 선생의 작업을 곁에서 보고 제자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교수들을 위한 연구 공간이 충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학생들에게도 당부한 두 가지가 있었다.

“어떤 작업을 시작했다고 해서 한 가지만 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루고루 자기가 먹어보지 않았던 것들에도 기웃기웃 관심을 가져 보기도 하고, 여차하면 시도해서 실패도 맛보라”고. 장수홍 명예교수는 예비 공예가에게 정말 중요한 건 타인의 것과 아주 다른 자기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퇴임 후 장수홍 명예교수는 용인시 고기리 부근에 작업실을 지었다. 따뜻한 봄, 학교에 오랜동안 묵혀 뒀던 작업 공간을 그곳에 옮겼다. 그 작업장에서 매일 작업만을 집중할 장수홍 교수가 눈에 훤하다.
정리: 김리연(공예 07)
written by Hyewon
2012/ 11/ 8